작가 노트 나는 내가 나를 가장 잘 알면서도, 동시에 가장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나는 유난히 예민한 사람이었다. 타인의 시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을 견디기 어려웠고, 나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만큼 타인의 모습에도 쉽게 예민해졌다.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관찰하고, 그 사람의 행동에 나름의 이유를 찾아내고,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면 비로소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에도 비슷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알아야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관찰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일로 이어졌다. 꽃과 추상화된 얼굴, 기하학적인 도형들은 내 안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형상들이다. 초기에는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질문하며 색이 없는 층위를 쌓아 올렸고, 이후에는 사람과 사물의 형상을 직선으로 나누고 해체하며 나를 표현했다. 벽 위에 일곱 가지 색으로 그림을 옮겨 테이프로 그리는 작업 역시 나를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였다. 서로 다른 형식으로 이어진 작업들은 모두 지금의 마음지도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마음지도는 나를 완성된 모습으로 설명하는 지도가 아니라, 아직 알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 그려 나가는 지도이다. 최근 나는 어두웠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시간은 단지 상처로만 남아 있지 않다. 그 시절을 지나온 나는 타인의 마음을 살피고, 서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때의 나에게도 조금은 다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기억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시의 상황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남아 있다. 다만 모든 기억에 명확한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가고 있다. 이번 전시 《이름 없는 것의 정원》은 그렇게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과 기억, 나조차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흔적들을 모아 놓은 공간이다. 정원에는 저마다 다른 모습의 꽃이 자란다. 어떤 꽃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어떤 꽃은 언제 피어났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그 모든 존재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설명해야만 정원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어쩌면 끝내 나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일이 자신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고쳐 나가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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