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연결 중: 익숙한 사물의 낯선 변신
전시 서울

느리게 연결 중: 익숙한 사물의 낯선 변신

기간9월 10일(목) ~ 10월 11일(일)
장소사비나미술관

황재원의 작업은 뜨개질과 직조라는 수공예적 행위를 현대미술의 언어로 확장하며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사물과 시간, 기억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속도와 효율이 삶의 기준이 된 오늘날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빠르게 반응하지만 정작 하나의 사물을 오래 바라보고 그 안에 깃든 감각과 기억을 천천히 되새길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황재원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정반대의 속도를 지닌 뜨개질과 직조를 선택한다. 한 코를 뜨고 다시 한 코를 잇는다. 같은 동작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야 비로소 하나의 면과 형태가 드러난다. 이 과정에는 단축키도, 건너뛰기도 없다. 손이 움직인 만큼만 작품이 자라고 머문 시간만큼 형태가 쌓인다. 작업 초기 뜨개질과 직조가 빠르게 흘러가는 외부의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를 회복하기 위한 행위였다면 최근에는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다시 불러내고 서로 다른 삶의 감각을 엮어내는 관계의 직조로 확장되고 있다. 작가에게 뜨개실은 소재를 넘어 손이 지나간 시간의 기록이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서사가 된다. ㅁ익숙한 사물이 낯설어지는 순간 황재원의 작업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일상의 사물을 변형하는 방식이다. 텔레비전, 선풍기, 휴대전화처럼 익숙한 사물에 털실을 덧입혀 본래의 기능과 물성을 뒤흔든다. 단단했던 것은 부드러워지고 빠르게 회전해야 할 기계는 느려진다. 효율을 위해 만들어진 산업제품은 어느 순간 낯설고 시적인 조형물로 변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현대미술에서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게 했던 살바도르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 르네 마그리트의 기묘한 병치, 클래스 올덴버그의 부드러운 조각을 떠올리게 한다. 황재원은 사물을 극적으로 왜곡하기보다 그 위에 손이 머문 시간을 켜켜이 덧입힌다. 대량 생산된 익명의 사물 위에 한 사람의 시간과 노동이 축적되면서 사물은 새로운 기억과 감각을 지닌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ㅁ차가운 사물에 따뜻한 시간을 입히다 전시장에서는 일상의 풍경을 실로 재구성한 병풍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부드러운 직조의 질감을 입은 브라운관 텔레비전 《애국가도 끝난 시간》, 털실로 짠 날개를 단 선풍기 《시원하니?》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시원하니?》는 작가의 작업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본래 빠르게 회전하며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내야 할 차갑고 단단한 선풍기 날개가 털실을 입는 순간, 기계적 효율성은 멈추고 사물은 따뜻하고 느린 존재로 변모한다. 기능적으로는 무력해졌지만 시각과 촉각적으로는 오히려 훨씬 풍부해진다. 쓸모를 잠시 내려놓은 사물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고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익숙함에 가려져 있던 감각이 그 순간 다시 깨어난다. ㅁ빠른 시대에 느림을 선택한다는 것 뜨개질과 직조는 효율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비생산적인 노동처럼 보일 수 있다. 기계라면 짧은 시간에 끝낼 일을 사람은 몇 시간, 때로는 며칠 동안 같은 움직임을 반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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