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에게 삶은 예술이었고, 예술은 곧 삶이었다. 그의 강렬했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삶과 예술의 관계와 생애에 따른 작품의 변화를 짐작해 보고자 한다. 문신이 살았던 시대는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격동기였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 전쟁, 급격한 산업화 등 혼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도 운명처럼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문신의 삶을 상세한 연보를 통해 살펴보자. 문신은 1922년 1월 16일 일본 규슈 사가현 다케오의 작은 도시에서 아버지 문찬이와 어머니 치와타 타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유분방하고 개척 정신을 가진 아버지는 자신이 동경하던 비행사 안창남의 성을 가져와 문안신(文安信)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1927년 5세가 되던 해, 문신의 가족은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으로 오게 되는데, 얼마지 않아 부모님이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할머니와 숙부의 슬하에서 자라게 된다. 그가 11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홀로 마산에 정착한다. 이때 문신은 어머니와 이별하게 된다.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문신은 자신의 예술적 근원이 아버지와 함께한 어린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훗날 자신의 작품이 추상적이나 자연의 생명성(체)을 연상시키는 것은 어린 시절 잠재의식의 발현이며, 아버지와 마산 바다에서 추억뿐 아니라 매사 최선을 다하는 부친의 생활 태도와 체질적인 성실성, 뜨거운 집착성이 문신의 정신적 바탕과 시련을 극복하는 용기를 갖게 해주었다. 십 대의 문신은 외국 명화를 다루는 화방에서 일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피카소, 세잔, 고흐 등 화집을 접하며 수많은 명화를 모작하는데, 특히 피카소의 작품을 이해할수록 ‘독창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한다. 16세쯤, 비밀리에 만주행을 계획하던 중 자신을 찾아온 친구의 권유로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있었기에 일본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던 문신이었지만, 미술을 공부하겠다는 일념이 그를 이끌었다. 일본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며 극장일, 목공, 구두닦이 등 아르바이트하여 학비를 충당하였고, 일부는 마산에 계신 아버지에게 보내 현재 미술관 부지를 매입하도록 한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한 문신은 마산, 부산, 서울 등지에서 전시를 개최한다. (1946), (1946), (1948), (1948) 등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환경과 그 환경에서 생산되는 사물을 자신만의 색채와 형태로 대담하게 표현하는데, 서울 동화화랑에서 (1948)에서 평론가 길진섭은 문신의 작품에서 ‘감득(感得)할 수 있는 솔직한 소박성’이 나타나며, ‘낡은 사상과 양식의 허의(虛儀)를 버린 작가’라 높이 평하기도 한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종군 화가로도 활동하며 (1952)을 통해 전쟁의 현장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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